충북 충주 박팽년 사우

    박팽년 사우에 다녀왔습니다.

     

    박팽년 사우

    충청북도 기념물 제27호

    소재지: 충주시 신니면 산청리

    이곳은 충신 박팽년(1417~1456)의 사당으로 영조 51년(1775)에 처음 세웠다가 1968년에 중수되었다.

    박팽년은 조선 초기의 학자로 자는 인수, 호는 취금헌이며 본관은 순천이다. 세종 16년(1434)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의 학사로 여러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세조 1년(1455)에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형조참판으로 단종복위츨 도모하다 김질의 밀고로 발각되어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과 함께 사형을 당하니 사육신중의 한 분이다. 숙종 때 관작이 복구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정이다.

    이 사우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목조팔작집으로 입구인 일각문을 지나면 사당 정면에 솟을삼문이 있는데, 중앙에는 박팽년, 좌측에는 그의 2남인 박순, 우측에는 박순의 유복자인 박일산이 충신으로 명정된 편액이 각각 걸려있다.

     

    박팽년 사우

    충청북도기념물 제27호

    여기는 조선조 세종때 집현전 학사인 박팽년(1417~1456) 선생의 사우와 충신문이다. 공은 세조의 찬위에 반대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극형당한 사육신중의 한분이시다. 숙종때 충정이라 시호를 내리고 영조34년에(1758)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영조51년(1775)에 사우와 충신문을 세웠다. 충신문에는 공의 이남 순과 순의 유복자 일산의 명정이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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