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수일 장군 신도비와 묘소에 산책을 나왔습니다.
진입로 전경 입니다.
충무공 이수일 신도비와 충훈사가 보입니다.
충무공 이수일 신도비 입니다.
이 비의 귀부는 화강암이고 비신은 대리석으로 4,100여자가 음각되어 있으며 이수에는 쌍룡을 양각하였는데 앞.뒷면에 각각 2마리의 용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귀부는 웅장하고 추상적인 형태로 조각되었고, 이 비를 지나면 사당인 충훈사와 장군의 묘소가 있다.
전체적으로 비가 웅장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글씨가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다. 특히 귀부와 이수의 미술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문화제로 지정되었다.
조선 현종8년(1667)에 세워진 이 비는 이조판서 김수항이 전하고 영상 이경여가 찬 했으며 한성부 판윤 김좌명이 서 하였다.
비의 크기는 420*97*27cm이다.
충훈사 입니다.
화장실이 멋들어지게 지어졌습니다.
충무공 이수일 장군 묘소 입니다.
이수일(1554~1632)장군과 부인 전주이씨를 합장한 묘소로, 이수일은 조선 중기의 무장이며, 이완 대장의 아버지이다. 자는 계순, 호는 은암, 본관은 경주이다. 선조 16년(1583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기현감으로 의병을 일으켜 분전했으며,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승진되어 왜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가선대부(종2품)에 올랐다. 그후 성주목사 및 함경도 병마절도사로서 왜적 및 변방야인들의 소굴을 소탕하고, 인조 2년(1624년) 이괄의 난 때 서울을 수복한 공으로 진무공신 2등과 계림부원군에 봉해진 뒤 형조 판서에 이르렀다. 묘소의 남쪽에는 충훈사가 있으며, 그 앞으로는 현종 8년(1667)에 세워진 신도비가 있다.
아주 기분좋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 옵니다.
관리가 너무너무 잘 되어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충무공 이수일 묘소와 신도비]
조선 중기의 무신인 은암(隱庵) 이수일(1554∼1632) 장군의 묘소이다. 선조 16년(1583)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의 벼슬을 거쳐 선전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장기현감으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다. 그후 밀양목사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맡았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성주목사로서 왜적을 격퇴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부원수가 되어 반란군을 대파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위치한 그의 묘는 부인 전주 이씨와 합장한 것으로 화강암으로 봉분의 아래부분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동자석 한쌍이 있고, 오른쪽에는 김집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쓴 묘비가 세워져 있다. 묘소의 아래쪽에는 현종 8년(1667)에 대리석으로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으며, 50m 떨어진 곳에는 사당(祠堂)이 있다.
'여행 이야기 > 충북 충주시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북 충주시 노은면 충경공 유백증 영정 (0) | 2011.09.30 |
---|---|
명성황후 유허지 (0) | 2011.09.29 |
충북 충주시 금가면 하강서원과 모현정 (0) | 2011.09.28 |
충주시 엄정면 목계 나루터 (0) | 2011.09.27 |
충북 충주 장미산성 (0) | 2011.09.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