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 연안이씨 쌍효각

    충북 충주시 동량면 연안이씨 쌍효각 입니다.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 제46호 입니다.

     

    이시희, 이시걸 형제는 연안이씨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4세손으로 부친과 모친의 상(喪)을 당하여 형제가 함께 정성을 다해 시묘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1722년(경종 2)에 정려(旌閭)가 내려져 효자문이 건립되었다. 그 후 1756년(영조 32) 이시희, 이시걸 형제에게 각각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장사랑(將士郞)의 벼슬이 증직되었다.

     원래 연안이씨 쌍효각은 1722년 정려가 명해져 1878년 살미면 신당리에 세워졌으나 충주댐 건설로 수몰이 되면서 후손들이 1983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연안이씨 쌍효각 중수비

    부모님의 병환에 겨울철 얼음위에서 치성을 드려 잉어를 구하고, 꿩을 구하는데 스스로 날아들고, 대소변을 맛보아 간호하였으며 병환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갈라 피를 드려 소생시키고, 어버이를 대신해 죽기를 하늘에 기도하고, 밤중에 약을 구하러 나서면 호랑이가 인도하였는데 효자공 형제분이 호랑이를 타고 약을 구하러 넘나들던 고개가 살미의 솔고개인데 이후 형제고개라 불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형제가 시묘하였는데 호랑이가 지켜 주었고 효자공이 돌아가시자 호랑이도 죽어 살미 텃골에 호랑이 무덤이 지금까지 전하니 효자공 형제분의 효성에 사람과 하늘이 모두 감동한 이적이 아니겠는가.

     

     

     

     일각문을 세운 사괴석 담장 내에 남향으로 배치하였으며, 건물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사면에 홍살을 돌렸다. 구조는 원형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워 이익공 계통의 공포(栱包)를 구성하였고, 익공 끝에는 연꽃 모양을 새겨넣었으며, 창방으로 짜인 기둥 사이에는 화반 한 개를 놓아 주심도리 장혀를 받치도록 하였다. 가구는 굴도리 4량집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건물은 모두 단청이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편액과 방형(方形)의 대좌(臺座)에 원두갈석(圓頭碣石)으로 된 쌍효비가 안치되어 있다. 편액에는 ‘유명조선효자 증통정대부 승정원우승지 겸 경연참찬관 이시희장사랑 시걸형제지문 숭정기원후 세차 임인 사월 일명정려후 삼십오년 병자 증직(有名朝鮮孝子贈通政大夫承政院右承旨兼經筵參贊官李時熙將士郞時杰兄弟之門崇禎紀元後歲次壬寅四月日命旌閭後三十五年丙子贈職)’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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