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2010

    사진출처 - 건강셀프 등산회, 연신내 둥지 국제국내 결혼, 문산초등 45회

    지리산 행복학교의 개교

    누구나 도시에 지치지만 아무나 도시를 떠날 수는 없다.

    지금 그들이 지리산을 등에지고, 섬진강을 바라보며 옹기종기 모여 산다.

    그곳이 바로 지리산 행복학교다.

     

     

    버들치 시인의 노래

    노릇한 봄, 햇살 그윽한 향.....

    슬픔을 잃은 시인은 손 가는 요리, 찻잔마다 정성을 다하는데... 

     

     

    낙장불입 1

    절망이 데려간 곳...

    빨치산의 땅, 그리고 아버지의 땅

    산 자의 운명을 알 도리가 없으니... 

     

     

    낙장불입 2

    운명이 멈춰선 곳, 나를 안아준 지리산

    혼자가 아닌 세상, 다시 세상과 소통하다.

     

     

     

    행여

    이승의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저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기만 해도

    갈비뼈가 어긋나고

     

    마른 갈잎이 흔들리면

    그 잎으로 그대의 이름을 썼다.

     

     

    40년 산사람 함태식 옹

    작은 일도 지극해지면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된다.

    장명등,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

     

     

    그곳에서 집을 마련하는 세가지 방법

    도시의 삶에 치이고 부대낄 때마다  나는 생각하곤 한다.

    "50만원이면 돼. 일단 1년은 지낼 수 있어,

    그렇게 시작하면 되는 거야"라고.

     

     

     

    '내비도'를 아십니까

    홀연 지리산에 등장한 최도사

    "시인이 무슨 돈이 있어! 난 사리야! 그냥 내비도!" 

     

     

    낙장불입 시인 이사하다

    술 먹기 좋은 정자, 발 아래 놓인 것 같은 섬진강

    문제는 집세 1백만 원인데, 냉장고 사줄 터이니 밀어붙여! 

     

     

    버들치 병들다

    버시인은 가빠오는 호흡을 고르고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억센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결과는... 

     

     

    화전놀이

    11시 화전놀이를 위해 새벽에 서둘러 내려갔는데

    누워 있던 버들치는 서울 것들이 잠을 깨운다며

    "산이 떠내려가냐, 강이 증발하냐. 그렇게 살려면 서울서 돈 벌지 여기 뭐하러 와 있겠냐?" 한다. 

     

     

    기타리스트의 귀농일기

    낙원상가에서 장사하던 기타리스트

    농사짓고 닭 키우다, 다시 기타를 잡는데... 

     

     

    '스발녀'의 정모

    집 나간 딸 찾아 화개 장터에 나타난 뿔이 난 장모는

    결국 지리산 자락 계곡에 취해 한마디 내뱉는데... 

     

     

    그날 밤, 그 모텔에선

    꽁지 작가 신고에 출동한 경찰, 남자를 연행해 가고

    다음날 아침 전전긍긍한 남친들 첫 닭이 울기 전에 길을 나서는데... 

     

     

    그 사람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낙향한 L선배, 사랑 때문에 눈물을 보이고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거야" 한다. 

     

     

    행복한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다시 오지 않을 그날들을 생각한다.

    깊기는 첫사랑 같고

    온갖 뉘우침으로 설레는

    아, 삶 속의 죽음이야

    다시 오지 않는 날들이여... 

     

     

    다정도 병인 양 1

    지리산 어귀에서 만난 가수 등불

    한잔 마시자는 말에 술판이 벌어지는데, 좋던 분위기는 어디 가고 갑자기 삿대질이... 

     

     

    다정도 병인양 2

    등불은 몸부림쳤다.

    걱정이 된 버시인과 낙시인이 강하게 붙들자,

    그녀는 소리쳤다. 

     

     

    정은 늙을 줄도 몰라라

    쫒겨난 밥집의 콧대 높던 여주인,

    '강남좌파'를 보더니 핑크빛으로... 

                                                                                                     

     

    시골 생활의 정취

    토종닭 타령을 하던 서울 친구들

    기어코 닭을 잡았는데, 닭을 잡기만 한다고 해서는 되는 일도 아니고...

    잡기는 하는데 죽이지는 못하겠고... 

                                                                                                      

     

    나무를 심는 사람

    눈 앞의 이익을 뿌리친 아버지 왈

    "낭구라 카는 거는 10년 멀리 내다보는 기 아니라, 20년 30년을 내다보는 기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17세 때 출가한 스님, 평생 스승을 모시다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데,

    삼보일배도 모자라서 결국 스님을 사라지게 하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처음으로 국가자격증 따기

    낙향을 했다 낙향에 실패한 사업가가  버들치 시인에게

    스쿠터를 남기고 떠났다.

    버시인 소식에 최도사도 스쿠터를 장만했는데, 두 사람 모두 면허증이 없으니... 

     

     

    그 여자네 반짝이는 옷가게

    갈 곳 없는 세 가족 섬진강에 둥지를 틀고,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천막을 치고 옷가게를 연다.

    고알피엠 여사 낙시인에게 옷 사달라고 조르는데... 

     

     

    선풍기도 난로로 아니 전등도 하나 없는

    간판도 없는 두어 평 비닐하우스 무허가 옷가게

    어려서나 더 젊어서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반짝이는 반짝이 옷,

    너울너울 인형 같은 공주 옷을 파는 그 여자의 옷가게

    그녀에게서 사온 옷을 안고 잠을 청하면

    푸른 섬진강물이

    은빛 모래톱 찰랑찰랑 간지르는 소리

    동화 속 공주가 나타나는 꿈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구례에서 하동 사이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반짝이는 옷가게

    그녀가 웃고 있다

    서비스 커피도 한잔 준다 

     

     

     

    기타리스트의 가이드 알바

    어려운 농사일도 배우고 이제는 관광가이드까지 나서는데

    지리산활공장이 무엇인지 몰라서야! 

     

     

    그 사람이 없어도 괞찮아

    꽁지 작가 낙시인의 빈집에서 막 낮잠을 즐기려는 찰라

    미모의 미니스커트 여인이 들이닥치면서... 

     

     

    낙시인과 장모의 '살가운 여름'

    새로 이사 온 집에 모시기 어려운 장모님 등장하고,

    고알피엠 여사의 어리광이 시작되는데,

    장모는 낙시인의 수염이 마음에 안 드는지 한마디... 

     

     

    '소풍' 가실래요

    팥빙수가 맛있는 작은 까페 '소풍'은 이제는

    국제적인 사랑방으로 통한다.

    어느 날 쫀이 똥독이 올라 쓰러지는 비상사태까지 발생하니... 

     

     

    소망이 두려움보다 커지는 그날

    가끔 지리산을 사진에 담던 괞찮은 직장의 프로그래머 강씨는

    불현듯 지리산 땅 1만5천평과 포클레인을 장만하는데... 

     

     

    지리산 노총각들의 '비가'

    순정은 있으나 여자가 없던가?

    지리산 자락의 목수 총각 사랑은 어디쯤... 

     

     

    불교 삼총사 '수경 스님의 빈자리'

    사찰의 선방에서 들리는 고알피엠의 수다 소리 정적을 깨고,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눈을 감으시는데... 

     

     

    '섬지사 동네밴드' 결성 막전막후

    갑작스레 들이닥친 맴버들

    서로 악기 실력으로 자웅을 가리는데,

    가방 안에서 악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버들치 시인은... 

     

     

     

    악양에 산다

     

    악양에는 없는 것이 너무 많아

    삼층집도 없어 아파트도 없어

    악양에는 없는 것이 너무너무 많아

    색시집도 없어 비닐하우스도 없어

    난 악양에 산다 난 악양에 산다.

    섬진강가 은모래 반짝이는

    지리산 자락 햇볕 쏟아지는

    난 악양에 산다.

     

    악양에는 좋은 것이 너무 많아

    바람에 춤추는 청보리밭 키 낮은 돌담

    악양에는 좋은 것이 너무너무 많아

    맛있는 대봉감 뛰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난 악양에 산다 난 악양에 산다

    섬진강가 은모래 반짝이는

    지리산 자락 햇볕 쏟아지는

    난 악양에 산다 

     

     

     

    학교종이 땡땡땡

    지리산 인근의 사람들 하나둘 모여 학교를 열고,

    웃으며 술도 마시고 사람도 알아가며 즐겁게 배우다. 

     

     

    지리산 행복학교의 저녁풍경

    '바람도 아닌 것에 뒤척이기 싫어서 나는 도시를 떠났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행복학교가 그립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풉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서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 철쭉꽃 길을 따라

    온 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결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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