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아산 청곡사 입니다.
청곡사
지정번호: 전통사찰 제74호
소재지: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18번지
신라 49대 헌강왕 5년(879)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창건하게 된 동기는 남강변에서 청학이 날아와 서기가 충만함을 보고 절터로 정하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으며, 그 후 고려말 우왕때 실사사 장로 상총대사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선조 광해 연간에 복원한 것으로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건물의 형식은 단층 팔작지붕 와가로서 다포체 계통을 따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활주를 받쳐 보강하고 있다.
대웅전에 봉안한 석가삼존상은 광해군 7년(1615)에 조성된 불상으로 임진왜란 이후 불상으로는 비교적 대작에 속한다.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
국보 제302호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괘불화는 실외의 의식에 사용된 대형의 불화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이 불화는 세로가 10m, 가로가 6.37m로 삼베바탕이며, 1722년에 그려졌다. 화면구성은 비교적 단순한데, 본존인 여래와 좌우 협시보살이 화면을 가특 채우듯 표현되어 있고, 위쪽에 아난과 가섭, 두 구의 여래와 보살이 좌우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삼존의 존명은 통례로 보아 석가여래와 문수, 보현보살로 짐작된다.
본존은 약간 둔중해 보이기는 하나 큰 화면에 어울리는 당당한 모습이며, 각 존상의 형상도 이지러짐이 없고 세부 묘사도 치밀하다. 채색은 상용에 어울리게 억제하여 붉은색과 녹청이 주조를 이루는데, 반면에 형식적이기는 하나 각 부분을 문양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그림은 면료한 주제, 그에 어울리는 상형과 색채감으로 인하여 현현성에 성공한 작품으로 짐작한다.
이 불화의 제작을 주도한 의겸은 경상, 전라도 지방에서 활약한 당대 최고의 화사였다는 점에서 이 불화는 그 유파의 양식을 규명하는 조은 자료로 평가된다.
청곡사 대웅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1호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청곡사는 통일신라의 헌강왕 5년(879)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6년(1380)에 실상대사가 중수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광해군 5년(1612)에 복원하였고, 조선 말기에 포우대사가 재차 중수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진주 남강변에서 푸른 학이 이곳으로 날아와 앉으니 도선국사가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한 곳이라 하여 절터를 잡았다 한다. 학이 찾아온 다리라는 뜻을 가진 사찰 입구의 방학교는 바로 이런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이름이다.
이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기둥은 가운데가 약간 불룩한 배흘림으로 처리하였으며, 처마를 받쳐주는 기둥 위의 장식물은 조선 후기 다포계 팔작집의 대웅전답지 않게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편이다. 지붕의 네 귀퉁이는 처마받침 기둥이 있으며 기둥의 주춧돌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대웅전은 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의 건축 양식이 뒤섞여 있으며, 일제 때의 대대적인 중수로 인해 원래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찰 전체의 면모가 잘 보존되어 있고, 방학교 밑을 흐르는 시냇물과도 잘 어울려 아직도 청학이 날아올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청곡사 업경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9호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이 건물은 879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청곡사를 창건할 때 대웅전 옆에 건립한 부속건물이다. 이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612년(광해군 4) 중건되었고 다시 조선말기에 포우대사가 대웅전과 여러 부속건물을 중수할 때 함께 중수되었다. 업경전은 일반적으로 명부전 혹은 지장전 등으로 불리우며,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염라대왕 등 10대왕을 봉안한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석가 입멸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부처업슨 세계에 머물면서 육도 중생을 교화한다는 보살이다. 이 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에 들보 5량으로 조성된 이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단순한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우물천장과 우물마루로 조성되는 등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진주 청곡사 금강역사상
경상남도 우형문화재 제348호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금강역사는 불교의 수호신 중 하나로, 다른말로 인왕역사라고도 한다. 보통 사찰 문 양쪽에 서 있는데, 왼쪽은 밀적금강, 오른쪽은 나라연금강이다. 금강의 머리 부분에는 언제나 둥근 빛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이들 신이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혜 또한 뛰어나다는 사실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나라연금강은 입을 벌려 '아'하고 소리치는 둣한 형상을 하여 '아금강역사'라고 하고,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에 '음금강역사'라고도 부른다. 이 '아'와 '음'은 범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이다. 그러므로 이금강역사의 입은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금강역사상의 특징은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무섭지 않고 약간은 민화적 형상을 취한다는데 있다.
이곳 청곡사 업경전 안의 좌우에 서있는 금강역사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명부시왕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문지기상이다. 대형 괴목에 이음새 없이 조각된 사실적인 조각 수법이 뛰어나 신체의 생동감을 잘 전해주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 작품으로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드물게 나무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귀중하다.
청곡사 3층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이 탑은 대웅전의 정면에 있지 않고 그 좌측 약 30미터 지점에 별도로 서 있어서 일반적인 탑의 배치 양식과 다르다.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인 2층 받침에 정사각형의 3층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탑의 받침 부분과 탑신부 모두 간략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인데, 특히 탑신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처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받침이나 탑신에는 모서리기둥과 받침기둥을 조각한 것 외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고, 지붕돌에는 처마의 끝을 살짝 들어 올려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이에 비해 꼭대기부분은 노반과 사발을 엎어놓은 형태의 복발, 양화, 구슬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서, 시대에 따라 달라진 탑의 꼭대기 부분의 변화 양상을 살펴본는 데 도움이 된다.
이 탑은 절의 창건 당시에 세워졌다고 하나 받침 부분이 간략하게 처리되고 탑신 및 지붕돌이 축소된 것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건립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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